40대 의대교수의 갑작스런 죽음…혼자 일 떠맡다가 과로사 당했나? [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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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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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현장 ‘돌연사’의 기록


[저격-20] 부산지역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안과 의사가 24일 자택에서 갑작스럽게 숨졌습니다.

극단적 선택이나 범죄 관련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25일 오전 4시30분쯤 부산의 3차 상급종합병원 소속 40대 안과 교수 의식이 없다는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이 이 교수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호흡과 맥박이 없었습니다.

전공의 집단 이탈이 길어지는 가운데 부산의 한 대학병원 내 병동이 텅 비어 있다. [자료=연합뉴스]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집과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응급조치를 받았지만 교수는 결국 숨졌습니다.

이 교수가 근무하던 병원 관계자는 그의 사인에 대해 “지주막하 출혈로 안타깝게 급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고 밝혔습니다.

40대 이 교수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두고 일각에서는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과로사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교수가 속한 대학병원 안과에 있던 전공의들도 모두 사표를 내고 현장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에 남은 교수들은 전공의가 하던 역할을 번갈아 맡으며 공백을 메워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교수가 얼마나 연속으로 근무했는지 등은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 원인을 조사 중입니다.

부산에서는 일부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사직서 제출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부산대병원과 동아대병원이 대표적입니다.

병원 측은 전문의와 전임의 등을 투입해 진료 공백을 최소화하고 있지만 이들에게 업무가 몰리면서 피로감과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과로사 등 돌연사는 막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업무 과중으로 인한 돌연사는 의료인뿐만 아니라 공무원, 집배원 등 사회 곳곳에서 벌어져 왔습니다.

고양시공무원노조 “한달새 공무원 2명 돌연사…대책마련 절실”
최근 고양시 공무원 두 명이 한달새 돌연사를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1월 25일 고양시공무원노조에 따르면 일산서구청에서 근무하던 A씨는 1월 4일 자택에서, 고양시도서관에서 근무하던 B씨도 1월 22일 자택에서 숨진채 발견됐습니다.

노조는 “고양시 공무원들이 시장과 시의회와의 갈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데다, 과중한 업무로 인해 과로사 또는 돌연사로 내몰리고 있다”며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과로사 예방 입법 공청회 [자료=연합뉴스]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된 군산의료원 공보의, 유족 과로사 주장
2021년 2월 전북 군산의료원에서 근무하던 공중보건의사가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적이 있었습니다.

숨진 공보의 유족 측은 응급실과 코로나19 진료업무 등 업무과중으로 인한 과로사를 주장했습니다.

같은 해 1월 26일 오후 군산의료원 관사에서 응급의학과 소속 공보의 Y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관할 경찰은 전날부터 Y씨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유족의 신고를 받고 관사를 찾았다가 현관 앞에 쓰러져 있는 A씨를 발견했습니다.

A씨는 2020년 4월부터 군산의료원 응급의학센터에서 근무해왔습니다.

군산의료원 전경 [자료=연합뉴스]
2021년 초 1월부터 보름간 신종 코로나19 경증 환자를 치료하는 김제시 생활치료센터에서 파견 근무를 하다 군산의료원 응급의학센터로 복귀했습니다.

유족 측은 “숨진 아들이 응급실 진료와 코로나 환자 진료에 김제 생활치료센터까지 파견 나가서 근무까지 하면서 힘들어했다”고 전하며 과로사를 주장했습니다.

이필수 전남도의사회 회장(당시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전북 군산의료원 응급의학센터에서 근무하시던 공보의 선생님께서 숨지신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며 “해당 공보의는 군산의료원 응급의학과장으로 근무하며, 지역에서 생사를 다투는 응급환자의 진료와 더불어 코로나19 환자도 함께 진료하는 격무에 시달렸다”고 전했습니다.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과로사·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돌연사
2019년에는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과로사에 이어,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연휴중 당직실에서 돌연사했습니다.

두 의사 모두 설 연휴 기간 동안의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노력하다 숨진 것으로, 의사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의료체계 근본의 문제라는 지적이 일었습니다.

윤 센터장은 2019년 2월 4일 오후 6시경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실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1차 검안에서 ‘급성 심정지’라는 소견이 나왔고 누적된 과로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됐습니다.

가평서 우체국 집배원 돌연사…경찰, 과로사 가능성 수사
2019년 8월 경기도 가평우체국 소속 집배원이 자택에서 갑자기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과로사 가능성을 조사했습니다.

가평경찰서 등에 따르면 같은 해 8월 26일 오전 9시쯤 가평우체국 소속 상시계약직 집배원 44살 A씨가 가평군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A씨가 아침에 출근하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자 동료가 119에 신고, A씨의 사망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부검을 실시한 결과 A씨는 심장 비대에 의해 전날 밤 갑자기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격무로 인한 사망일 수 있다는 노조 측 주장에 따라 관련성을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中 의대생 돌연사에 코로나 과로사 의혹…“대중 분노”
업무 과중으로 인한 과로사는 우리나라 문제만이 아닙니다.

중국에서 코로나19 감염자 급증으로 의료 체계가 압박을 받고 있을 당시, 한 의대생의 돌연사를 둘러싸고 과로사 의혹이 제기되면서 대중이 분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쓰촨성 청두의 한 병원은 2022년 12월 14일 성명을 통해 병원에서 근무하던 의대생 천모 씨가 전날 저녁 쓰러졌고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병원 측은 천씨가 심장과 관련한 문제로 사망했다고 밝혔으나 누리꾼들은 그가 과로했고 코로나19에 감염됐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해당 뉴스는 이날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 조회 수 2억7000만 회를 기록하며 역대급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중국 안후이성의 코로나19 검사소 [자료=연합뉴스]
블룸버그는 “누리꾼들은 발열 진료소의 의사들이 먹거나, 화장실을 갈 시간도 없다고 말한다”고 전했습니다.

전날 홍콩 명보는 “베이징의 한 대형 병원에서 하루 만에 700명 이상의 의사와 간호사가 양성 판정을 받았고, 이는 병원 직원의 20%에 해당한다”고 중국 매체를 인용해 전했습니다.

명보는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베이징은 최근 무증상·경증 의료진은 계속 환자를 진료하도록 하고 있다”며 “의사로부터 고위험군 환자에게 바이러스가 전염될 위험도 제기되지만 감염 의사를 모두 근무에서 빼면 병원이 운영되지 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일부 병원에서는 은퇴한 의료진의 업무 복귀를 요청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돌연사 막으려면…“의사소통 통한 조직 문화 개선 필요”
한국 사회 조직 문화는 위계적이다보니 업무가 과중해도 의사소통을 통해 동료와 해결하지 못하고, 본인이 어떻게 해서든 해결하려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로 인해 과로사 등 돌연사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는 “한국의 업무 분장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잘 되어 있지 않다”며 “업무 분장이 잘 될수록 업무 속도는 느려질 수 있지만 개인의 일과 휴식의 밸런스는 좋아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업무를 빨리 처리하는 사람일수록 각광 받고 능력있는 사람으로 대우 받는 한국 조직 문화가 돌연사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라며 “이로 인해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조직에 적응하지 못 하고 퇴사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이 교수는 “이런 조직 문화를 개선해 원활한 의사소통으로 동료들과 업무 분장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돌연사 문제를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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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여군 출신 기자입니다. 전설의 아메리칸 스나이퍼-라마다의 악마-크리스 카일 같은 기자가 되겠습니다. 사건 콘텐츠 [저격]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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